시대정신 (부제: 피터 드러커 죽이기)
3월 4, 2009 by Jiwoong Chung
Filed under Business, Change
안도의 건축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
지난 가을 오사카로 홀홀단신 여행을 다녀왔던 적이 있다. 여행의 주된 목적은 바로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을 보는 것. 안도가 직접 쓴 ‘연전연패‘라 는 책을 한 손에 든 채 , 내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일본어라곤 한 마디도 못하는 덕분에, 정체 모를 섬에 갇힐뻔 하기도 하고, 거꾸로 탄 신칸센 덕분에 끼니를 굶기도 했었지만, 안도의 건축은 그만큼의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안도는 오직 그곳에서밖에 만들 수 없는 장소를 만들어내는 건축가로 유명하다. 기존의 지형이나 배경과 동떨어진 건축이 아니라, 원래 그곳만이 지닐 수 있는 자연, 사회, 시대적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축가다. 그의 건축은 그래서, 꼭 그 자리에서 보고 느껴야만 참된 뜻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가 항상 소리 높여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시대 정신’ 이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가진 의미를 표현하는 것이 우리가 가진 사명이라는 말이다.
건축은 기능면에서 현대에 적응해야만 생명을 가질 수 있다 — 안도 타다오

안도 타다오 - 빛의 교회 (The church of light)
그 어떤 장식도 없이, 빛 과 나만이 존재하는 교회
불황의 시대가 의미하는 것
꿀벌과 게릴라(Leading 원제: Leading the Revolution) 의 저자인 게리 하멜은 근래에 번역된 ‘경영의 미래( 원제: Future of Management)’ 에서 , 이제 경영이라는 개념을 폐기할 때가 왔다고 이야기 한다. 체계화된 지식으로써의 경영은 이미 성숙단계에 이르렀다고 말하면서, 그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기존의 조직 체계와 정면으로 상반되는 조직형태다. 자발적으로 재생되고, 성장하는 조직 , 집단적인 지혜가 곳곳에 스며드는 그런 꿈틀거리는 조직을 이야기한다. 흡사 복잡계 조직이나, Web 과 같은 네트워크 시스템과 유사하다.
그런가 하면,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불황의 시대가 의미하는 것은 결국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종말이라고 지적한다. 실물경제에 기반하지 않은 금융공학의 허상. 시장이라는 허구적 존재에 모든것을 위임했던, 국가들은 저마다 황급히 보호주의의 간판으로 바꿔달으며, 금융과 시장구조에 메스를 대고 있다. 다보스 포럼에서각국의 리더와 지성인들이 뱉어낸 전망은 고해성사에 가깝다. Smart Growth Manifesto는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몸부림인 셈이다. 숫자놀이를 표방하는 성장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마케팅으로 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이제 소비자들은 광고와 시장을 믿지 않는다. 대량 유통구조와 독과점의 그물로 기업에게 유리한 게임을 펼칠 수 있었던 시대는 끝났다. 새로운 유통 구조와, 현명해진 소비자 그룹의 등장은 기업을 갈 수록 궁지로 내몬다.
미디어? 매스 미디어는 이제 앞 날을 가늠하지 못하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전통적인 미디어의 영향력과, 그 영향력에 기반했던 비즈니스 모델은 고사 직전에 있다. 이제 소셜 미디어, 분산형 미디어, 인스턴트 미디어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뉴욕타임즈의 Hyper Local 전략은 생존을 위해 자신들이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권위를 내놓을수도 있다는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조직은 끊임없이 변화할 수 있는 세포 조직으로 진화하고, 경제는 다시금 실물경제로 복귀하며, 시장은 고객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미디어는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한다. 우리가 곧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We the Media). 그야말로 우리는 기존의 모든 개념이 동시에 붕괴하는 변곡점에 서 있다.
우리는 마침내 종착역에 도달했다. 이제 지식의 축적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새로운 경제 체제에서는 새로운 부의 가치를 창조해내는 기업이들이야말로 바로 진정한 혁명가들이다 . - 게리 하멜
안도 타다오 - 유메부타이 공중정원.
산 기슭에 있던 기존의 경사를 따라, 큐브 모양의 작은 정원들이 한없이 펼쳐진다.
과거를 폐기하라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시기일수록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성공 패턴에 더욱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실패를 두려워 할 수록, 자신이 지녔던 성공의 경험에 안주하게 되는 것이 사람이 지닌 기본적인 속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경험을 준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주지 못한다. 물론, 앞선 경험을 통해, 모르던 현상에 대한 인식의 틀을 갖추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경험은 체계의 학습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 체계를 이해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문제를 더 빨리 인식하고,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전의 가르침은 그 ‘틀(Frame)’과 그 속에 묻어있는 통찰(Insight)을 우리에게 선물해준다.
그러나, 우리는 누가 더 지식이 많은지를 놓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전면적인 변화의 시대 속에서, 누가 더 빨리 변화할 수 있는지가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혁신과 실행의 관점에서 보면, 문제는 전혀 달라진다. 우리 앞에, 과거의 개념들을 해체하고, 우리 시대에 걸맞는 체계를 다시 만들어나가야 하는 숙제가 주어진 것이다.
우리는
- 시장 자본주의를 해체해야 하고, (양적 성장이라는 허구에서 벗어나야 하고)
- 시장이란 개념을 폐기해야 하며. (고정된 생산유통구조의 미신을 버려야 하고)
- 피터 드러커를 살해 해야 한다. ( 경영의 과학적 방법론들을 처음부터 다시 점검해야 한다)
우리에겐 필요한 것은, 무덤 속의 애덤 스미스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 가는 이 시대에 필요한 ‘살아 있는 해석’ 이기 때문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조상을 만나면 조상을 죽여라, 그어느 것에도 붙들리거나 얽메이지말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삶을 살아가라
안도 타다오 - 명화의 정원
작은 회랑 사이로, 면마다 각각 한 폭씩의 그림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림을 돋보이게 하는 빛과 그림자 외에는 그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시대에 필요한 정신을 찾아서
우리가 항상 혁신을 위한 해답을찾아 헤매면서도 그 답을 쉽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 있을까? 그것은 우리가 가진 틀이 너무 두텁기 때문이다. 지식이 없던 때는 세상을 분별하지 못하지만, 지식이 쌓이고 경험이 쌓여도 우리가 습득한 것은 결국 고정된 틀에 불과하다.
혁신은 틀 밖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 틀 밖으로 나가는 열쇠는, 우리가 매일 부딪히는 삶 속에서 존재한다. 공자의 경험을, 드러커의 통찰을 빌리되, 우리는 그 통찰을 끊임없이 이 시대 속에서 재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과거의 경험과 성공의 법칙들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대답에 스스로 답하지 않고서는 혁신을 이야기 할 수 없다.
안도가 꼭 그 장소에만 어울리는 건축을 통해, 그 장소를 살아가는 사람과 시대의 목소리를 말하고자 했듯이, 우리도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걸맞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를 이해하고, 그 시대가 주는 숙제 속에서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가는 삶. 시대를 관통하는 사상의 중심에 서서, 때로는 시대가 지닌 사상을 앞장서서 이끄는 그런 혁신이야말로,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우리는 우리 시대의 정신으로 사고 하고, 우리 시대의 목소리로 외치며, 우리 시대의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대, 세기의 사상의 선두에서 걸어라 - 나폴레옹

안도 타다오 - 물의 교회 (The church of water)
형식에 는 본디 어떠한 의미도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 보고 느끼고 살아가는 이 순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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