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떠한 브랜드인가?

11월 15, 2008 by Jiwoong Chung  
Filed under Business, Change, People

한국과 같이 겸손의 미덕으로 똘똘 뭉친 사회에서, 자기 자신을 브랜딩(Branding)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종종 사회에 대한 반역행위 취급을 당한다.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것은 그런 부정적 견해가 아닌, 한 개인이 자신의 가치를 정립하고, 그것을 삶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그런 행위에 대한 것이다. 돈이나 명예와는 별개로, 결과를 넘어 그들이 살아온 삶의 걸음걸이 자체가, 하나의 감동이자, 전설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우리는 그런 이들을, 영속하는 가치를 지닌 브랜드에 비유해 이렇게 부르곤 한다. 휴먼 브랜드.

얼마전부터 애독하는 유니타스 브랜드 라는 격월간지가 있다. 브랜드와 마케팅 전략을 주로 다루고 있지만, 그 깊이 덕분에 삶이나 경영 전반을 꿰뚫어 보는 시야를 얻을 수 있기때문에, 점점 애정의 폭이 더해가고 있다 (격하게 아낀다. 유니타스 브랜드! ^^)

휴먼브랜드의 조건

사람이 브랜드가 된다고? 무엇이 그들에게 그런 가치를 부여하는 것일까? 유니타스 브랜드 Vol 4 의 특집인 ‘휴먼 브랜드’는, 이외수,이익훈,김중만과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휴먼브랜드의 조건을 밝히고 있다. 책을 읽고나서, 책의 정의와 별도로, 개인적으로 생각해본 휴먼브랜드의 조건을 몇가지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 일관성
    삶의 전반에 걸쳐, 자신의 이야기(비전)를 꾸준히 표현해야 한다.
  • 신뢰
    그 이야기를 자신의 삶을 통해 증명해야 한다. 이 사람의 비전에는 삶에서 배어나오는 무게가 있음을 누구나 느낄수 있어야 한다.
  • 관계
    브랜드는 자신이 창조하지만, 결국은 타인이 보는 관점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타인에게 나의 가치를 전달하고, 그 인식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브랜드는 탄생한다. 브랜드는 커뮤니케이션이다.

이 세가지는 브랜드로써의 속성을 지니기 위해 기본적으로 지녀야할 조건들이다. 일관성을 통해 신뢰가 생기고, 그 신뢰를 통해 타인이 그 사람의 가치를 인정하면 가장 기본적인 브랜드의 요건은 형성된다. 하지만, 인간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삶을 통해 브랜드가 되려면 다음의 세 가지가 필요하다.

  • 비전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가치가 있어야 한다. 자신만의 철학을 확립하지 못한채, 사회에서 부여하는 가치에 따라 모범답안을 제출하는 삶은 브랜드가 될 수 없다.
  • 열정
    삶 전반에 걸쳐, 그러한 가치를 유지하고, 그것이 타인에게 드러나고 영향을 미치려면 무엇보다 뜨거워야 한다. 자신의 가슴에서 들끓다 못해, 밖으로 그 피끓음이 발산될 수 있어야 한다.
  • 차별화
    모든 인간은 자신만의 독특한 가치를 지닐 권리와 의무를 지닌다. (웹에서 더욱 강조되는 다양성이야말로 그런 변화의 징표다) 그리고, 휴먼브랜드는 그 누구보다 “자신만의” 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

오바마는 휴먼브랜드가 되었다. 미국인에게 오바마라는 브랜드는, 국가주의 이전에 미국이라는 나라의 구심점이 되었던, 본연의 정신이 아직 남아있음을 확인하게끔 한 희망의 증거다. 즉, 오바마는 ‘미국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희망’의 브랜드다. 그리고 그 브랜드의 진정성을 우리 모두가 인정했기에 그는 살아있는 휴먼브랜드가 되었다. 누구도 가지 않는 길을 걸었지만, 그것이 그를 만들었다.
(오바마라는 브랜드에 대한 이해를 위해, 그의 당선연설문 의 일독을 추천한다. 그가 추구하는 가치가 녹아있는 명문이다)

백재현 , 그가 브랜드가 되어가는 과정

어제 우연히 보게된 스타성공 스토리 란 프로그램에서는, 개그맨에서 뮤지컬 연출가로 거듭난 백재현씨의 삶을 풀어내고 있었다. 백재현씨 하면 초창기 개그콘서트를 주도하면서, 생수 한병을 원샷하는 개인기로 인기를 모았던 바로 그 사람이다. 2006년경 그가 연출한 페이스오프 뮤지컬에 한동안 매혹된적이 있어, 그의 이야기는 더욱 남다르게 다가왔다. (참고로 그가 연출,주연을 맡은 뮤지컬 루나틱은 2004년부터 상영되어 2000회 공연을 넘겼고, 2007년에는 마침내 루나틱 전용관을 열었다. 관련기사 )

  •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개그맨 출신인 그가 뮤지컬을? 그는 모든 것을 모른다고 생각하고, 그 누구에나 배움을 구했다고 한다.
  • 그 누구도 No라고 생각했던 일.
    하지만, 뮤지컬을 잘 아는 사람들이 놓치고 있던 포인트를 볼 수 있었던것은 ‘몰랐던’ 그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는 항상 관행을 비켜가고 관객과 소통하고 새로움을 추구했다. 티켓후불제, 뮤지컬 발성과 다른 보컬 트레이닝. 그가 ‘알았던’ 사람이면 가능한 일일까?
  • 연출은 조각할뿐이지요.
    사람을 믿고 위임한다. 모든 창조적인 리더가 그리 하듯, 연출가는 다른이들의 작업을 마무리하는 역활에 불구하다고 말한다. 나를 낮추고 더 많은 에너지가 스스로 발휘될 수 있게 만든다.
  • 사람을 만드는 거죠.
    좋은 배우를 데려다,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작품을 통해 배우가 성장하도록 이끌고, 그것이 결국 좋은 작품을 만든다. 작품 하나가 아닌, 인재에 보다 무게를 주는 그의 접근법은 픽사가 집단 창의성을 이끌어낸 비결 과도 일맥상통한다. ‘저도 정상적인 기준으로는 개그맨이 될 수 없었다고 생각하거든요’라고 말하며, 배경이나 현재의 재능에 구애받지 않고, 사람의 자세를 보고 인재를 모으는 그의 시야는 이런 철학에서 비롯된다.
  • 가르치는게 아니라, 내가 배우는 거죠
    가르치는 행위를 통해 내가 배우는 것이다. 실제 나의 배움의 결과를 확인하는 피드백은 물론, 배우는 이의 지적 젊음으로부터 오히려 교습자의 지식이 배가 된다. 진정한 교습은 쌍방향이다.

모른다고 했지만, 그 모름의 과정을 통해 그는 새로운 자신만의 가치를 발굴해 낼 수 있었다. 뮤지컬의 틀을 깨뜨리는 새로운 시도들을 통해, 창작뮤지컬의 가능성을 발견해낸 그이기에, 10년후 한국형 뮤지컬을 세계에 알리겠다는 그의 포부가 허풍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눈이, 그의 삶이 브랜드로써 내게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나에게 그는 이미 휴먼브랜드다.

정지웅, 나는 어떠한 브랜드인가?

그렇다면, 나 자신은 과연 어떠한 브랜드일까?

수개월전부터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얼마 전 한 인터뷰 를 통해 여러가지 질문들에 답하면서, 내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었다. (두서없는 답변들을 멋진 글로 만들어주신 송우일님께 이 자리를 빌어 깊은 감사말씀을 드린다)

개인적으로 천부적인 재능이나, 선천적인 인간적 장점들은 나와는 거리가 먼 단어들이라고 생각한다. 본래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고, 배움에 늦게 눈을 떴기 때문에, 오직 배움 앞에 겸손한 것만이 내가 취할 수 있는 단 한가지 선택이었다. 나는 과거에도 부족하고, 현재에도 부족하고, 미래에도 부족할것이다. 그리고 그 부족함이 나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3년 동안, 그런 생각들을 지난 블로그 를 통해 담았고, 돌이켜보니 결국 그 와중에서 배운 많은 것들이 지금의 나의 토대가 되어준 것 같다. ‘보다 즐거운 웹’이라는 내가 추구해야할 가치를 배웠으며, 그 원동력이 되는 기술의 속성을 배웠고, 삶의 모든 측면에 있어 배움에 열린 자세를 만들었다. 나 혼자 만든것이 아니라, 칭찬과 격려, 토론, 비판과 비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수없이 부딪히고, 깨지는 과정 자체가 스승이었던 셈이다. 글이 나의 생각을 형성하고 이끌어주리라는 기대에 시작한 글쓰기가, 내가 찾아야할 브랜드(가치)를 형성해주고 있었다. (물론, 지금의 나는 여전히 부족하고, 여전히 하자 많은 인간이다 ^^; )

하지만, 글이나 이상의 한계는 명확하다. 새로움만으로 변화는 다가오지 않기때문이다. 변화는 이끌어내는 것이다. 행동하는 것이다. 그간 겪었던 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들은 아마도, 그런 실천하지 못하는 생각의 한계가 불러일으킨것이라고 이제와서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가야할 길은 분명하다. 기회도 분명하다. 웹이 가져다줄 변화의 토대는, 사회의 많은 통념들을 해체하고 새로이 건축할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웹은 도구일뿐이다. 이 도구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달라진다. 장및빛 미래와 잿빛 미래, 그 어느 방향도 가능하다. 그리고 나는 배타성,획일성,권위,소유와 같은 가치들 보다는, 개방성,다양성,상생,생성과 같은 가치들이 우리의 미래를 채울 수 있기를 갈망한다.

이 공간은 그런 새로운 도전을 위한 여정의 작은 시작이다.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 알고자 하는 것을 구하는 자리. 또 다시 여러번 깨어지는 과정속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실천을 통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토대가 되기를 희망한다. 과거의 배움으로 인해, 지금의 내가 ’험블’이라는 브랜드로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이 배움이 삶에 있어서,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여정의 길잡이가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그들은 ’그것’이 되었다.

끝으로, 유니타스 브랜드의 글 중에서 감명깊었던 한 소절을 인용해본다.

사람은 자신을 찾기 이전에 수많은 경쟁 시스템 속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의해 자신의 기준을 맞춘다. 중고등학생은 대학의 기준에, 대학생들은 취업의 기준에, 회사에서는 목표달성만을 바라보며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를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간다. 이러한 환경에서 사람들은 ‘그 중 제일’이 되는 것에서 행복감을 얻는다. 그중에 최고, 그중에 최적, 그리고 그 중에 하나를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찾는다. 결국 돈 이야기이다. 회사 동기보다 많이 받고, 업계 평균보다 많이 받고, 나이보다 많이 받고, 업무량보다 많이 받는 것이 존재의 기쁨이다. 일반 시장에서 이런 상황을 ’가격경쟁시장’이라고 한다. 할인, 끼워팔기 아니면 쿠폰 주기 같은 가격으로만 소구하는 시장이다. 이런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옆집보다 싸게 파는 것이다.
(..)
우리가 만난 사람들, 즉 브랜드가 된 사람들은 ’가격’을 정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 것은 다른 사람보다 좀 더 우수한 ‘명품 인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삶의 기준, 일의 기준, 그리고 가치의 기준’을 제시하는 인간을 말하는 것이다. 특정 영역을 자신의 존재감으로 가득 채운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인터뷰했던 대부분의 브랜드와 같은 사람들은 자신의 업무와 일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었고, 더 열정적이며, 더 성실했다. 사실 ’더’의 기준이 모호하긴 하다.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노력’이 아니라 즐거움이었다. 유순신 대표는 섬김이 되고, 김중만 작가는 사진이 되며, 이익훈 회장은 영어가 되고, 이외수 작가는 글이 되었다. 정말 그들은 ‘그것(가치,본질,목표,혹은 기준)’이 되었다.

당신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당신이 할 수 있는 것.

11월 14, 2008 by Jiwoong Ch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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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이야기를 하나 소개합니다. 이미 접하신 분들도 많으시리라고 생각합니다.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사업을 통해 꽤 잘나가던 친구였고, 32살 생일을 맞아 우연히 아프리카의 케냐로 여행을 떠나게 되죠. 거기에서 그는 단지 “깨끗한 물”이 없어서, 병들고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그 충격은 그의 인생에 조그만 전환점을 맞이하게 합니다.

9월에 태어난 사람들 (Born in September)

집에 돌아온 그는 평소와는 다른 생일을 맞이하기로 결심합니다. 선물도, 파티도 없는. 대신에 한 가지를 생각해냅니다. 32살 생일을 맞아, 32달러를 깨끗한 물이 필요한 그들을 위해 쓰기로. 그리고 자신처럼 9월에 생일을 맞이하는 사람들에게, 이 제안을 함께 하자고 얘기합니다.

92명이 뜻에 동참합니다. 그들의 작은 돈이 모입니다. 그 돈으로 케냐의 병원에 깨끗한 물을 제공할 수 있는 시설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그는 33살을 맞이하게 됩니다. 움직임은 조금 더 커집니다. 올해의 목표는 150만불을 모금해, 333개의 우물을 세우고, 그리하여 에티오피아의 15만명의 사람들이 깨끗하고 안전한 물을 마실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1.5m to build 333 wells and give 150,000 people in Ethiopia clean and safe drinking water.)

그의 메시지는 간단합니다. 그리고 그래서 더 강렬합니다.

  • 하나. 9월이 생일이신가요? 여러분의 페이지를 만들고 여러분의 친구들에게 33달러를 기부받으세요 (Create a Page)
  • 둘. 아니라면, 제게 33달러를 기부하세요. 돈은 100% 깨끗한 물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쓰입니다. (Donate 33$)
  • 셋.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세요 (Share the Story)

이 이야기는 일파만파 퍼져나갔고, 현재 9월에 태어난 사람들 외에도, 이 단체의 Charity Water라는 20$짜리 생수 또한 많은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이 생수의 수익금 전액은 아프리카에 우물을 파는데 사용된다고 합니다. 왜 20$냐구요? 20$는 아프리카에서 한 사람이 15년동안 마실 수 있는 물을 제공할 수 있는 금액이라고 하네요)

동영상을 직접 보시죠 :)


피드에서 동영상이 보이지 않으면 여기 를 눌러 감상하세요

흔히 말하는 Social Media를 활용한 멋진 마케팅 사례입니다. 단순하고, 명확하고, 일관된 메시지가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Charity Water 홈페이지의 주소와, 트레일러 동영상 링크는 웹의 이곳저곳을 가로지르며 이야기를 퍼뜨리고 있지요.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것은 그 형식이 아닌, 거기에 담긴 메시지가 아닌가 합니다. 왜 우리가 이 운동에 깊은 인상을 받을까요? 그것은 이 운동이 우리의 ’인간적’인 부분을 제대로 짚어냈기 때문입니다.

Social Web 이 의미하는 것

요즘 인터넷 세상은 어딜 가나 Social의 열풍입니다. 사회학자와 경제학자들도 이런 웹에서 촉발된 새로운 변화들에, 앞다투어 흥미로운 연구결과들을 쏟아내고 있지요. 이제는 Social Web의 세상이야! Social Network가 세상을 지배할거야! 하지만, 우리는 Social Web으로의 전이가, 어떤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하는지 알고는 있는걸까요?

  • 프라할라드 교수는 Future of Competition(번역서명: 경쟁의 미래 )란 책에서, 미래의 시장은 기업과 소비자의 공동 가치 창출에 기반하는 형태로 바뀔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가치는 소비자 개개인의 경험을 중심으로, 기업과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만들어지고, 모든 전략은 이런 흐름 속에서 재해석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경제 구조의 변화)
  • 클레어 셔키는 Here Comes Everybody(번역서명: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에서, 이제는 모든 대중이 사회적 도구들을 당연하게 여기는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얘기합니다. 이런 도구를 통해, 인류의 “공유하고-협력하고-함께 행동하는” 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는 것이죠. 우리 모두가 역사에 길이 남을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라 셔키는 말합니다 (사회 구조의 변화)
  • 조슈아 포터는 Designing for the Social Web(번역서명: 소셜 웹기획 )에서 모든 소셜 사이트가, 복잡적응계(Complex Adaptive System)의 형질을 띄고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오늘 작동하던 기획이, 내일 작동하지 않을 수 있는 사용자 중심의 변화가 모든 SNS와 커뮤니티에 내재되어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행위 구조의 변화)

근-현대를 거치면서, 개인의 가치에 관심을 기울이자는 움직임이 유독 많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모든 운동은 체제(System)안에서, 대중(Mass)이라는 정형화된 집단을 통해서만 행해졌습니다. 개인의 가치보다는 체제의 가치가 우선되었죠. (체제라는 범주 안에서의 사회) 하지만, 지금 불어닥치는 변화들은 좀 더 개인적인 측면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바로, 개인과 개인간의 만남인,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 (인간 중심의 사회)에 기반해서, 모든 사회-경제-행위모델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죠.

말이 조금 어려웠는데, 결국은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Social Web은 바로, 인간적인 웹 이라고요. 인간의 본성 속에 깃들어있는 기본적인 특성들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런 변화들을 이해할수 없다는 것이지요. 사람답고자 하는, 사회적이고자 하는 본성들 말입니다. 이런 인간답고자 하는 욕구들을 그냥 지나친다면, 대중이라는 돋보기, 체제라는 돋보기로 변화들을 들여다 보려는 노력들도 헛수고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네요.

당신이 할 수 있는 것

경제 , 사회 , 문화 , 기술. 예로부터 이 중 한가지라도 변화할때는, 많은 기회들이 뒤따랐습니다. 그리고 보통은, 그 기회를 알아차린 일부사람들만이 그 혜택을 보았죠. 현대의 많은 변화가 그렇지만, 특히 오늘날 웹이 시사하는 변화는 이런 여러 분야의 변화가 한데 뒤섞여 일어나는 통합적인 변화의 양상을 띕니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에 Social Web – 사회적인 도구로써의 웹이 존재합니다. 사용하는 개인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제공하는 도구로써 말이지요.

이러한 Social Web의 시대가 시사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많은 가능성 속에서 유독, 당신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예전에는 거창한 것으로만 생각되었던 일 –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이죠. 어렵지 않습니다. “당신”이 시작한 한 발짜욱에, “우리”가 힘을 보탠다면 가능한 일입니다. 방법도 다양합니다.

  • 조그만한 변화를 하나 시도해보거나, (Open any kinds of Movement or Ideas )
  • 그 변화에 작은 움직임을 보태거나. (Participate and Collaborate)
  • 혹은 그저 이야기를 퍼뜨리는 것만으로도 가능합니다. (Share your story)

어쩌면, Social Web은 우리가 보다 인간다워질 수 있도록, 현대사회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작은 기회가 아닌가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

마지막으로, 동영상을 하나 더 보시죠. Charity Water의 수익금으로 에티오피아에 첫 우물이 세워지는 장면입니다.


피드에서 동영상이 보이지 않으면 여기 를 눌러 감상하세요

블로그 구독 관련 문제 수정했습니다.

11월 12, 2008 by Jiwoong Chung  
Filed under Change

블로그 툴에서 내보내는 피드 형식에 문제가 있었던것 같습니다. 일단 Feedburner의 피드 타입 변환 서비스(Convert Type Burner)를 사용해서, 널리 통용되는 RSS 2.0 규격 으로 블로그 글을 송출하도록 바꾸어놓았습니다.

그동안 구독에 어려움을 겪었던 분이 있으셨을텐데, 불편을 끼쳐 드린 점 죄송합니다. 이제 좀 더 원활하게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아울러, 부족한 글이지만, 좋게 보아주시는 많은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 말씀 드립니다 ^^

성공을 만드는 것은 운이 아니다

11월 11, 2008 by Jiwoong Chung  
Filed under Business, Change

앞서 Best Practice의 허구 에 대해 언급한 것 처럼, 성공한 기업들의 Best Practice들이 동일하게 되풀이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신에 새롭게 일어나는 많은 성공 사례들은, 마치 우연한 계기로 ‘어쩌다가’ 이루어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냥 하다가 보니 잘 됐다, 어쩌다보니 새로운 기회를 발견했다’라는 이야기들은, 마치 ‘교과서 위주로만 공부했어요’라는 수능 석차 1등의 말처럼 우리의 맥을 쏙 빼놓는다. 이렇게 (대다수의) 많은 성공들이 오직 우연에 의한 것으로 것처럼 보일때, 많은 이들이 ‘모든 성공은 결국 운에 달려 있다’라는 슬픈 합리화에 빠지기도 한다.

특히, 웹 비즈니스에서 이러한 주장은 좀 더 설득력을 얻는 듯 보인다. 엉뚱해보이는 전략들의 성공, 그리고 그 어느 전략도 쉽게 영속을 장담하지 못할만큼 급속하게 변화하는 시장 상황, 그 어느 분야보다 큰 불확실성들은, 많은 Best Practice들을 무력화시키고 만다.

하지만 과연 모든 성공이 그저 운에만 달려 있을까?

위대한 전략의 함정.

모든 기업은 각자 자신들이 시장에서 처한 조건과, 각자의 역량에 부합하는 최선의 전략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필연적으로 모든 시장은 ’경쟁’을 가정하기 때문에 기업은 어느 상황에서건 주어진 자원을 토대로, 가장 효율적인 싸움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제 아무리 뛰어난 전략일지라도, 사회,시장,기술의 변화 앞에서는 얼마든지 무력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 속에 기술과 전략이 참패한 사례로, 흔히 언급되는 것이 비디오 테잎 표준 전쟁 이다. 소니의 베타맥스는 분명 경쟁 규격인 마쯔시타의 VHS에 비해, 월등한 기술적 우위와 시장 지배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처참한 패배를 겪고 말았다. 덕분에, 소니의 전략에 문제가 있다거나, 기술 우위가 실제로 가진 파급력이 크지 않다는 비판이 오랜 기간 주류를 이룬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Strategy Paradox(번역서명 : 위대한 전략의 함정 )에서는 이와 반대로, 소니의 전략이 잘못된 전략이 아닌, 오히려 그들 스스로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이었음을 일깨워준다.

소니의 전략이 왜 그들 나름대로의 최선의 전략이었는지에 대해, 이 책은 크게 2가지 측면에 주목한다

  • 소니는 비디오 대여사업의 가능성을 알고 있었지만, 이미 수년전에 수립해놓은 제품 차별화전략(영상과 음향의 질을 극대화하는)에 따라 베타맥스라는 신기술을 개발했고, 그것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당시에 영화 대여 산업은 초기에 있었고, 참여하는 영화사는 극히 적었다. 따라서 소니는 이 시장이 천천히 성장할것이라고 판단한다)
  • 따 라서 소니는 대여사업에 적응하기 보다는, VHS와의 기술적 차별화에 초점을 두기로 판단한다. 비용이 아닌, TV프로그램의 홈 레코딩에 중점을 두고 , 기능적인 측면에 집중한다 (고품질,타임 시프팅등). 경쟁사인 마쯔시타가 원가절감에 일가견이 있었으므로, 소니의 이런 선택은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이 사례에서 소니는 시장의 현재상황을 현실적으로 분석했고, 자사가 가진 장점(기술적 우위)을 살린 전략을 수행했을 뿐이다. 다만, 2가지 불확실성을 간과 한채,

  • 비디오 대여 시장이 홈 레코딩 시장보다 빠르게 성장할것이라는 점.
  • 소비자들은 높은 품질 보다 낮은 가격을 선호할 것이라는 점.

네트워크 효과가 가져온, 비디오 대여 시장의 급격한 성장과, 소비자들의 성향 변화는 결과적으로 소니의 가정과 전략들을 무효로 만들었다. 사실, 비디오 대여 시장이 조금 더 늦게 성장하거나, 소비자들이 고화질 영상에 보다 관심을 보였더라면, 결과는 정반대가 되었을 수 도 있다. 결국 소니는 자신의 상황과 자원에 맞는 성공할 수 있는 전략을 세웠지만, 마쯔시타의 전략이 단지 시장상황에 맞았을뿐이다. 마쯔시타가 운이 좋긴 했지만, 소니의 전략도 나름대로 훌륭했다. 다만, 소니는 다음의 명제를 가벼이 여긴 것이라고 보는편이 좀 더 타당하다.

성공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전략은 가장 위험한 전략성 불확실성에 완전히 노출된다. (전략의 패러독스)

불확실성에 맞서기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전략은, 필연적으로 자신이 지닌 자원과 경쟁우위를 극대화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그 전략을 세운 기본 가정이 실패하는 순간, 그 위험성도 가장 높을 수 밖에 없다. 높은 가능성을 얻는 댓가로, 불확실성에 대한 가정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사실, 근본적으로 그러한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전략이 가지고 있는 핵심조건을 일부분 포기해야 한다. 사실 이런 이유에서, 많은 대기업들이 위험요소 관리(Risk Management)라는 명목으로, 차별화되지 않은 전략을 선보인다. 소위, 뭉툭한 전략은 이렇게 탄생한다. 크게 위험하지도 않지만, 그만큼 크게 성공할 수 도 없는 전략과 실행.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 이런 평범한 전략은 작은 실패로 끝나기 마련이다. (큰 실패가 아닌걸 다행으로 여겨야할까?)

날을 날카롭게 세운 전략이 성공한다는 가정은 언제나 유효하다. 그리고 사실 문제는 위험한 전략이 아닌, 불확실성에 있다. 그리고 이런 불확실성을 단일 전략 차원에서 관리하는 것은, 날카로운 칼을 뭉툭하게 만들 뿐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어디 있을까?

확실한 것은, 불확실성에 대응할 수 있는 보완 전략을 같이 가져가는 것이다. 시장의 상황은 항상 유동적으로 변한다. 하지만, 전략을 그에 따라 유동적으로 바꾼다면, 오히려 실행에 혼선을 빚을 뿐이다. 그리고 집중력이 결여된 실행이 빚어내는 결과물이 성공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에 가깝다. 하지만, 자사의 역량을 집중할 수 있는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하지만 위험한) 전략과 함께, 그 전략의 상반된 면을 보완할 수 있는 전략을 같이 가져간다면 어떨까? A → B → C 로 갈아타는 비용보다, 병렬로 진행되는 A와 B 상에서 A’ 또는 B’를 취하는 편이 비용측면에서도, 시장대응 측면에서도 훨씬 효율적이리라는 것은 명확하다.

전략의 성공에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차별화와 집중이다. 하지만, 오늘날 급변하는 시장은 더 많은 불확실성을 선사한다. 따라서, 집중과 불확실성이라는 두가지 토끼를 모두 잡으려면, 이러한 식의 대안 전략의 세트들을 유지해야한다. 이런 식으로,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시장의 상황을 주목하면서, 그 판도에 따라 A와 B 전략간의 자원 조정을 통해 불확실성에 맞서는 것. 이런 불확실성의 관리만이, 우리가 모든 성공을 그저 운으로 돌리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우월한 기술도, 치밀한 전략도, 급격한 변화 속에서 무력해지는 상황 속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세 가지로 나뉜다.

  • 모든 것을 운에만 돌리면서, 뛰어난(위험한) 전략과 실행에만 치중하거나 (집중)
  • 변화와 불확실성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뭉툭한 전략과, 흐지부지한 실행속을 거듭하거나 (분산)
  •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긴 시간 지평속에서 불확실성을 관리할 수 있는 대안을 유지하고 관리하거나 (집중과 분산)

모든 조직의 자원은 유한하다 (시간, 돈, 사람) 하지만, 우리가 좀 더 확실한 성공을 원한다면, 그 제한된 자원 속에서도 언제나 불확실성이라는 위험과 싸울 채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모든 성공을 운에만 맡겨 둔채 앞으로만 나아가기에는, 우리의 삶은 너무나 짧다.

신기술의 속성

11월 11, 2008 by Jiwoong Chung  
Filed under Change, Technology

분명히 신기술의 출현은 무엇보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기존의 기술에 엄청난 혼란을 야기한다 기존의 기술들은 새로운 기술의 체계적인 활용을 낳게 하는 사회 경제적인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흔히 그 자체의 가능성 이상을 강요당한다. 그리고 신기술의 출현은 심각한 위기의 원인이 될 수도 있는 투자의 이전을 초래한다. 그러나 언젠가는 또 다른 균형이 자리잡게 마련이며, 기존의 기술은 새로운 체계 안에서 정상적인 발전의 리듬을 되찾는다. 결국 대체가 아닌 축적이 있을 뿐이다. — 정보와 커뮤니케이션 , 로베르 에스카르피

앞서, 말한 것처럼 기술은 가능성의 원천 이다. 하지만, 신기술의 가능성과 그것이 가져다 줄 변화가 실제 적용되는 과정은 별개로 보는 것이 좋다. 인용한 문장에서처럼, 신기술은 가능성 이상을 강요당하기 마련이다. 가트너가 매해 발표하는 기술 트렌드 나, 오라일리의 기술 레이더 와 같은 것이, 이러한 과정이 구체화되어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들이 발표하는 기술의 변화 과정은 실제 수용보다는, 기술의 이슈화 정도에 보다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장에 변화가 일어나고, 그것이 사회적 현상으로 전이되는 시점은, 사실 이슈화의 거품이 차분히 가라앉을 즈음이라고 보는게 더 합리적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먹고사니즘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어느 생활철학자의 말처럼, 신기술마케팅의 필요성은 기술 자체의 실효성과는 별개로, 학계, 업계, 산업 주변부의 파생 업계들로 점차 퍼져나간다. 이 때 ’가능성’이라는 뜨거운 믿음 아래, 성숙과 수용이라는 비용문제는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신기술이 지닌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속성들이 무시된다.

  • 신기술의 변화는 실제로는 신기술만이 아닌, 여러 구 기술과의 복합작용안에서 빚어지는 결과물이다. 여러 구기술들이 성숙을 통해, 장벽을 약하게 만들었을때, 신 기술은 맨 마지막의 결정적인 한 방에 해당한다. 하지만, 장벽이 약해지기 전에는 신기술도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 신기술은 필연적으로 여러 단계의 성숙 과정을 필요로 한다. (기술 자체의 성숙 → 공학적 관점에서 성숙 → 시장비용측면의 성숙) 이밖에도 기술이 다수의 일반적 사용자에 더 가까우면 가까울 수록, 기술은 더 많은 사회적 성숙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무엇이나 사람이 제일 어려운 법이다.
  • 모든 신기술은 구기술을 대체하지 못하고, 기존 체계 안에서 다른 특성을 축적할 뿐이다. 신기술만을 고려할때, 많은 이들이 간과하는 것이, 기존에 보급된 기술의 저변이다. 현존하는 기술이 아무리 조악하더라도, 결국 그 수용은 도입 비용문제로 귀결된다. 표준 기술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런 도입 비용의 문제를 최소화 하기 위해, 많은 기술적,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표준 기술이 죄악에 가까울 정도로 끔찍하지 않은 이상, 거의 모든 신기술은 De facto Standard정도의 수렴 과정을 거쳐, 다시 새로운 표준화 과정을 거치게 마련이고, 결국 이 과정에서도 완전한 대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현재의 웹을 구성하고 있는 끔찍한 구기술들 도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대체가 아닌, 새로운 표준의 축적이 천천히 이루어질뿐이다.

특정 신기술이 아주 빠르게 이슈화가 된다면 충분히 시간을 두고 지켜보자. 그리고 특히 그 기술이 소위 말하는 혁신적인 개념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거나, 기술을 지지하는 커뮤니티의 규모가 아직 작다면, 당분간은 그 기술에 대한 관심은 잠시 접어두어도 좋다. (물론 가능성을 파악하는 과정은 꼭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만약, 그 기술이 옛날부터 통용되는 개념을 근사하게 포장했을 뿐이라는 이유로 폄하당하고 있다거나 , 여러 기술을 통합 또는 표준화한것이거나, 일부 커뮤니티의 열광적인 지지를 꾸준히 받고 있다는 신호가 오면, 그때는 잽싸게 안경을 새로이 고쳐쓰자. 바로 그 때가 거품 대신, 신기술의 참된 단 맛이 느껴지기 시작할때니까.

롱테일이 중요한 이유

11월 3, 2008 by Jiwoong Chung  
Filed under Business

웹2.0의 거품이 꺼지면서, 현상을 설명하던 많은 이론들도 동시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 물론 롱테일(Long Tail) 이론 도 그 중의 하나다.

관련된 논의들

파레토법칙이 지배하던 세상.

롱테일 이론이 주목받기 이전까지, 시장의 구조를 가장 잘 대변해주던 것은 파레토 법칙이다. 20%의 머리가 매출,소비,관심의 80%를 독식하는 ’쏠림’현상은, 웹 뿐만이 아닌, 모든 사회 현상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다. 일반적인 대량 생산-소비체제내에서는 상품이 전달되는 과정 또한 효용을 우선하는 대량 유통 구조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유통과정에서는 생산자가 보다 많은 힘을 가진다. 소비자 개개인의 욕구보다는, 생산자자가 최소비용으로 최대이익을 얻을 수 있는 선택이 우선하기 때문에, 소비자(사용자)는 항상 수동적으로 제한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 소비자의 취향이 본래, 대중적인 상품으로 쏠리는 것도 원인이 되지만, 제한된 유통구조가 그런 대중적인 취향을 만들어가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기때문이다.

롱테일의 출현

크리스 앤더슨이 물꼬를 텄던 롱테일에 대한 관심은, 이런 파레토 이론이 간과했던 반대편에 주목하자는 시도다. 개별로는 작은 관심을 받았던 소규모 상품들의 매출을 합치면, 무시 못할 양이 된다는 논지다. 때문에, 이러한 꼬리 부분의 다양한 소수적 취향에 관심을 기울이면,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이 제기 되었고, 새로운 패러다임에 목말라하던 많은 이들은, 이 떡밥을 덜컥 집어 삼켰다.

이런 꼬리 수요의 가능성은 사실, 현대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출현하기 시작한 니치 문화와도 일맥 상통한다. (때문에 marishin님의 지적도 분명 합당한 측면이 있다. ) 하지만, 웹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20%에 불과한 꼬리 부분의 매출이 오프라인에서 아예 판매가 불가능 했던 상품임을 주목해야 한다는 Channy님의 논지처럼, 기존의 경제 유통구조에서는 발생하기 힘든 현상을 증폭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대중적인 취향이라는 것은, (절반쯤은)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생산자는 대량유통구조 내에서 최대한의 이익을 얻기를 원한다. 소비자 또한 각자의 고유한 취향을 생산자에게 전달하려면, 집단을 형성해 생산자에게 어필해야 하는데, 그 집단 형성의 비용보다는 대중으로 머무르는 편이 합리적이기때문에, 머리 부분의 상품에 스스로를 맞춰간다. (여기서, 절반이라고 한정지은 이유는, 스스로 기꺼이 대중이라는 동류속에 머무르고자 하는 욕구가 나머지 절반을 차지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 그럼 롱테일은 이런 니치 문화가 돈이 된다는 사실을 입증한 획기적인 시도였을까? 결과적으로 롱테일은 그 스스로 돈이 되지 못했다. 꼬리는 여전히 꼬리였고, 마이너였을 뿐이며, 거대한 플랫폼을 지닌 사업자들이 가질 수 있는 옵션에 불과했다. 오히려 롱테일에서 새로운 금맥을 찾을 수 있으리라 여겼던 시도들은 처참히 실패하고 말았다.

롱테일이 의미하는 것

돈이 안된다고? 그렇다면, 롱테일의 의미는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롱테일의 의미는 개개인이 참여하는 모든 시스템이 성립하게 하는 기본 토대로써의 역할에 있다고 생각한다. 대중으로써의 일개 개인이 아닌, 독립적인 개개인의 취향이 드러나는 모든 종류의 시스템은 극단적으로 말해, 롱테일이 없이는 동작할 수 없다는 말이다. 요즘 우리는 이런 시스템들에 여러가지 이름을 붙이곤 한다. 소셜 플랫폼이나, 크라우드 소싱, 집단 지성같은. 하지만, 그 이름나 형태에 상관없이, 그런 시스템들이 하나같이 가정하는 것은 “다양한 사용자의 능동적인 참여”다.

하지만, 소셜 플랫폼을 분석하거나, 새로이 구상할때, 많은 이들이, 참여의 결과물에만 집중하는 오류를 범한다. 여러 사용자가 참여한 결과물은, 파레토 법칙의 경우처럼 대단위수의 특정 결과물로 수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해 속에서 종종 드러나는, 소위 실패하는 소셜 플랫폼의 설계는 다음 두가지 정도의 특성을 지닌다

  • 머리 부분에 집중한다
    • 인기 주제, 인기 키워드등에 집중한다.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기는 어려우니, 머리 부분에 최적화하면, 꼬리는 따라올 것이라는 가정이다. 이 경우 많은 사용자들이 주어진 머리만을 섭취하는 수동적인 대중으로 전락한다.
  • 시스템 차원에서 많은 제약을 가한다.
    • 사용자를 믿을수 없다 또는 기획이 사용자를 인도할것이라는 가정에서, 많은 장치를 배치하는 경우다. 물론, 사용자는 장치대로 움직여주기 보다는, 그 복잡성에 시스템을 거부하거나,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한다.

왜 이런 시도들이 하나같이 실패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런 실패에도 불구하고, 많은 소셜 플랫폼들이 계속해서 그런 오류를 범하고 있는것일까?

롱테일, 소셜 플랫폼의 원동력

사실, 참여를 통해, 자연스레 발생한(창발성) 여러가지 결과들은,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형태의 것이라기 보다는, 다양성 속에서 자기 스스로 조직화를 이룬 끝에 나온 산출물인 경우가 많다. 본디 인기있는 컨텐츠여서가 아니라, 소셜 플랫폼속의 여러가지 장치들을 통해, 확산되고 여과된 끝에, ‘어쩌다 보니’ 쏠림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러한 확산,여과장치에는 평판이나, 권위와 같은 신뢰 요소들도 포함되지만, 대부분의 네트워크에서는 이 마저도 유동적으로 결정된다) 그리고, 이러한 “어쩌다 보니”는 사실 다양성의 또 다른 말이라고 볼 수 있다.

미디어 롱테일 분석과 크리스 앤더슨의 비판 이라는 글에서 인용된 ‘미디어의 롱테일에 관한 월스트리트의 분석(A Wall Street analysis of the Long Tail of media)’ 에서는 이런 흥미로운 문구가 나온다.

우리는 TV의 시청 행태를 지켜보면서, 더 많은 선택권을 부여하는 게 활용도를 점증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는 걸 발견하게 됐다. 게다가 더 관련성이 높을수록 즉 ‘bookmarkable’ 자산은 추가될수록, 독자나 광고주, 투자자들에겐 가치가 만들어지는 경향을 띠었다.

이렇듯, 더 많은 선택권 속에서 발생하는 자유로운 다양성의 발현이야말로,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동인이이며, 그런 다양성 속에서 더 많은 접점이 생겨날 수록 (개체들이 충돌할 수록) 우리는 더 활발하고 생기발랄한 플랫폼을 얻을 수 있다. 소셜 플랫폼의 매력은, 사람만이 행할 수 있는 확산과 여과 , 재창조를 통해 플랫폼이 계속 진화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 바탕에는 무엇보다도 다양성 , 즉 꼬리 부분의 활발함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Clair Shirky의 Here comes Everybody (번역서명: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 에서도, 한 글귀를 인용해보자.

20대 80이라는 최적화 논리에는 틀린 점이 많다. 이 논리는 시스템을 머리쯤에서 잘라내면 전체 효율을 높일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그러한 행위는 실제로 전체 생태계에서 결정적인 부분을 잘라내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문구처럼, 롱테일은 사람들의 참여와 소통이 뿌리가 되는 생태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즉, 롱테일이야말로, 아마존, 넷플릭스와 같은 소셜 플랫폼을 유지하고 성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말이다. 우리가 Web 2.0을 통해, 애초에 기대했던것처럼, 롱테일 자체가 니치마켓의 비즈니스 가능성을 대변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롱테일은 그 자체로도 충분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롱테일이 활발하게 살아있는 플랫폼이야말로, 건강하게 성장하는 소셜 플랫폼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오늘날 마케팅, 유통, 판매와 같은 다양한 비즈니스 영역에서 소셜 플랫폼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시점에서, 우리는 이런 롱테일의 역할에 다시 한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셜 플랫폼을 구성하는 것은, 플랫폼에 참여하는 개개인의 경험의 총합이다. 비록 내게만 소중하고, 작은 관심밖에 받지 못하는 꼬리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또 내 친구들에게는 그 꼬리가 이 플랫폼에 애착을 느끼는 단 하나의 이유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작은 이유들이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네트워크에서 하나 둘 엮어갈때야말로, 비소로 소셜 플랫폼이 활발히 동작하게 된다는 사실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